26.자기앞의 생-에밀 아자르



지금 군대에 있는 동생이 입대하기전에 책을 몇권 선물해주고 갔는데, 난 이책을 보면서 아 내동생이 마냥 애는 아니구나;;; 무슨 애가 이런책을 읽어보라고 주는건데;;; 하면서 좀 의외기도 했고 놀래기도 했고.

책 자체는 정말 잼있고 좋았는데 처음 읽었을 즈음에는 좀 심난한일이 많았을때라 그냥 괜찮네 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얼마전 그냥 책장에 있는걸 뒤적거리다가 읽기시작했는데, 책을 손에서 놓을수가 없는거다. 아 이게 이렇게나 좋은책이었나 왜 그땐 몰랐지. 몰입하고 나니까 읽던걸 멈추고 다른걸 할수 없을정도로 빠져들었는데, 그런정도로 집중한 책이 오랜만이라서 되게 즐거웟다. 모모의 얘기를 읽다보면 참 한장한장 완전 소중하고 당연한 사실들을 깨닫게되는, 몇번은 읽어도 좋을 책이다.

1980년 '에밀 아자르'는 권총을 입에 물고 자살했고, 자살하기전에 남긴 유서를 통해 에밀 아자르라는 작가는 '로맹 가리'자신이라고 발표했다고 한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로맹가리는 아마 당대의 꽤 유명한 작가였던것 같고, 자신이 다른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했을때 과연 자신의 정체를 알아볼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을 했었던것 같다.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이책 '자기앞의 생'을 발표하고 책이 콩쿠르상을 받게 되는등 화제가 되자, 로맹가리는 사촌중 한명을 에밀 아자르라고 내세웠는데, 그 사람이 로맹가리와 친척임이 밝혀지자 아이러니하게도 로맹가리가 사촌인 에밀 아자르를 질투하고 있다고 사람들은 수근거리기도 했다는 거다. 


여기서 한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해야겠다. 그것은 곰브로비치가 아주 적절하게 표현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그에게 만들어준 얼굴"이 한 작가를 얼마나 구속할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은 내가 그런 시도를 한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이자 그 시도가 성공한 이유이기도 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얼굴"은 작가의 작품이나 작가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작업하던 초기에, 아는 [열렬한 포옹]을 가명으로 발표할지 어쩔지 아직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원고들을 평소대로 아무데나 굴리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우리집에 왔던 린다 노엘이 내 책상에서 제목이 분명하게 적힌 검정색 노트를 보게되었다. 훗날 에밀 아자르라는 미지의 인물이 대단한 반을을 얻게되었던 당시의 일기를 꺼내보면 그때 인기가 어느정도였는지 알수 있다. 노엘이 "그 작품의 저자는 로맹가리예요. 내가 봤어요. 내가 두눈으로 똑똑히 봤다구요"라고 아무리 떠들고 다녀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도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 친절한 여자는 내가 받아 마땅한 몫을 돌려받을수 있게하려고 무척애를 쓰고다녔다! 하지만 반응은 요지부동이었다. "로맹가리는 그런 글을 쓸 능력이 없다!" [NRF지]의 한 유명한 에세이스트가 로버르 갈리마르에게 단언했던 말이었다. 한자도 더하거나 덜함이 없이 글자 그대로이다. 또 어떤이는 내 소중한 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로맹 가리는 끝난 작가다. 그가 그런 글을 썻다는 것은 생각할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미 '어떤어떤 작가'라는 고정관념속에 위치지어진 기성작가일 뿐이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내 작품에 대해서 더이상 진지하게 연구하거나 알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한번 더 읽어보아야 해! 하지만 무얼 더 읽지?"

그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네권의 소설을 펴냈다. 나는 기존의 관념이 지배하는 쉽고 단순한 분석으로는 절대로 그 가명에서 나를 끌어낼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열렬한 포옹]에서 로맹가리의 목소리를 읽어낸 평론가는 단 한사람도 없었다. [자기앞의 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작품에는 [유럽의 교육][커다란 탈의실][새벽의 약속]에서와 정확히 일치하는 감수성, 문장과 표현, 인물들이 나온다. [쟁키스 콘의 춤]을 읽어보면, [자기앞의 생]의 작가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수 있었을 것이다. [솔로몬 왕의 고뇌]에 나오는 주인공의 친구들은 [게리 쿠퍼여 안녕]에서 그대로 다 나왔다. [게리 쿠퍼여 안녕]에 등장라는 레니라는 인물은 [솔로몬 왕의 고뇌]의 자노와 정확히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생각을 한다. 아자르는 이미 [튤립]에 나온다. 그러나 소위 '평론가'들 중에 누가 그것을 읽어냈는가? 

내가 얼마나 통쾌했을지 상상해보시라. 나의 작가 인생 전체에서 가장 달콤한 즐거움이었다. 이런 나의 경험은 문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작가의 사후에나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작가는 그 자신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더이상 아무도 신경쓸 일이 없게 되었을때, 비로소 자기가 받아 마땅한 몫을 돌려받게 되니까. 

(중략)
...그리고 문학세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오촌조카 에밀 아자르를 약간 질투하고 조금은 슬퍼하고 있는 로맹 가리가 불쌍하다는 말들이 사교계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흘러나와 내귀로 들어오기 시작했을때, [이 선 너머에서 당신의 티켓은 유효하지 않습니다]에서 나 자신의 쇠퇴를 고백하게 되고......
나는 그것들을 무척 즐겼다. 안녕. 그리고 감사한다. 

1979년 3월 21일
로맹가리



책 뒷부분에 에밀아자르가 남긴 유서를 통해 그러한 히스토리를 설명해주는 내용들이 있긴한데, 로맹가리와 에밀아자르 각각의 작품은 어떠했는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진심 궁금해졌다. 

일단 궁금한 두가지 큰 아이러니
1.[평론가]들은 과연, 그 분야의 작품과 진실을 파악하고 꿰뚫어볼수 있는 판단,분석을 할수 있는 소위 말하는 '전문가'가 맞는가.그들의 판단과 의견을 얼만큼 신뢰하는것이 맞는걸까.
2.진정한 작품의 가치는 작가의 사후에 이루어진다고 하면, 작가라는 자의 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작품에 대한 진실한 평가의 진정성이나 작품성의 보답은 어디로 가는가.


저런 담대한 실험을 할 생각을 한것도 신기하고 그런 실험속에 본인의 의도되로 되어가긴 했지만,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누군가는자신이 저지른 일을 알아주길 바라는 비슷한 심정과 같이 아무도 진실을 알아채지 못했을때... 작가는 유서에서 통쾌했고 즐겼다고 하지만 과연 즐겁기만 했을까. 조금은 허무하고 쓸쓸하지 않았을까. 
 

책자체도 무척 재미있고, 뒷부분에 있는 이책과 작가에 얽힌 에피소드들을 읽고나니 더 새롭고 흥미가 생겼다. 호기심은 많고 공부할것도 많고 먹고싶고 하고싶은것이 점점 많아져서 큰일이다-_;;;




이글루스 가든 - 천 권의 책읽기
by 아리난 | 2009/12/03 07:13 | _Boook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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