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 스콧 피츠제럴드 by TakeTree




2년이나 전부터 몇번이나 읽다가 접고 접고 접고 접고 -_-..
하루키와 친구가 되려만 세번 읽어야 되니깐ㅋ 이번엔 맘 독하게 먹고 끝까지 다 읽었다 헉헉

근데;; 음. 끝까지 읽고 나니깐. 그래도 좀 갠찮다 싶긴 한데
무슨 연유로 이걸 세번 읽으라고 한건지는 정말 의문이다. ㅋㅋㅋ

좀 뭔가 나로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인물들과
그런 인물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묘사가 좀 부족한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원 =ㅅ= 아직까정 알수가 없다

주영언니왈 : 그거 재미없기로 유~~명한 책이자너, 세번 읽을 정도면 참을성이 있으니까 그런거 아냐?ㅋ

...나름 설득력 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마지막 구절.


(전략)
나는 거기 앉아 오랜 미지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개츠비가 데이지의 집과 이어지는 부두 끝에서 처음으로 초록불빛을 발견했을 떄 느꼇을 경이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이 푸른 잔디밭을 향해 머나먼 길을 왔고, 자신의 꿈이 너무 가까이 있는 나머지 그것을 붙잡을 수 있을거라고 확신했을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꿈이 이미 도시 저쪽의 광막하게 어두운 어떤 돗, 어두운 벌판이 밤 밑으로 굴러들어간 곳으로 흘러가 버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개츠비는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에게서 자꾸만 멀어지는 그 초록 불빛을, 진탕 마시고 떠드는 바쿠스 제전같은 미래를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미래는 우리를 피해갔는데, 그러나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릴 것이고, 팔을 더 멀리 뻗칠 것이다. 어느 해맑은 아침에...
그렇게 우리는 계속 노를 저어 물살을 거슬러 과거 속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두번 더 읽어보자;;;;;
다음엔 다른 번역판으로 좀 읽어봐야겠다;; 그럼 좀 다를라나


이글루스 가든 - 천 권의 책읽기

덧글

  • 지나가다 2008/10/19 10:22 # 삭제 답글

    그렇습니까? 전 나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읽고보니 확실히 하루키가 스콧의 아류(?!)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하지만 전공서적이 아닌 소설을 두번 보는 건 정말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좀 듭니다. 삼국지 10번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라는 괴상한 말을 들으면 이렇게 답해줍니다. 그런 소설을 10번이나 읽을 정도로 할 일 없는 사람과는 삶을 얘기하지 말라. 이 세상에 볼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삼국지를 10번이나 읽은 굳은 머리와 인생을 논하랴?
  • TakeTree 2008/10/21 20:52 #

    하긴 그렇네요 ㅋㅋ 읽을 책은 참 많은데 굳이 삼국지만 10번 정독ㅋ(근데 세번 아니던가요?;;)

    그치만. 한 두번?? 세번까지는 읽을만 한것 같아요. 영화도 그렇고 한번 볼때랑 두번 볼때랑 조금 느낌이 다르니깐 몇번 볼만큼 맘에 들거나 그만한 이유가 있는 작품이면 두번??;; 쯤은 다시 봐도 괜찮지 않을까요? ㅎ
  • 방문자 2010/09/24 03:58 # 삭제 답글

    사실 피츠제럴드는 문장을 단순한 비유나 묘사가 아니라, 무언가의 암시로 쓰곤 하는 작가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짧은 문장 하나에 주제를 관통하는 거대한 뜻이 함축되곤 하는데요, 그래서 종종 겉만 보고 작품을 혹평하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많은 것이 문장 속에, 혹은 문장과 문장 사이의 빈 행간에 숨겨져 있어서, 반복해 읽을수록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저도 처음엔 분량에 비해 지나치게 난해하고 어렵다(문장이 난해하거나 기법이 실험적인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이해가 잘 안 되었어요;) 싶었는데, 다시 읽으니 좀 이해가 가고 몰랐던 것들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시간이 나면 다시 한 번 읽어보세요. 새로운 게 보이고 그만큼 소설이 재미있어집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닉이 동성애자인가 아닌가?"가 논점의 하나입니다(전 개인적으로 두 번 다 닉을 동성애자 성향의 인물로 읽어내서 동성애자라는 데 한 표!). 아직도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이 안 났어요. 그런데 한국 블로그의 포스트들을 쭈욱 둘러보니, 닉의 동성애자 가능성을 발견하신 분이 거의 없는 듯 하더군요. 그만큼 <위대한 개츠비>=미국 1920년대 상황+사랑 이라는 공식이 지나치게 주입된 탓이겠죠. 대한민국 문학 교육의 병폐입니다...
  • 아리난 2010/09/29 17:33 #

    오- 그런 관점의 해석도 있었다는건 몰랐어요. 어찌보면 그럴수도 있겠..다 싶네요ㅎ 그치만.. 음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것도 대한민국 문학 교육의 병폐인지도 모르겠지만ㅋㅋ 저는 굳이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 인지를 따져서 연애감정으로 비롯된 이타심이라고 해석하기보다는..그냥 사람대 사람사이의 측은지심 비슷한 시선으로 보는게 더 멋지지 않을까 싶어요ㅎ. 연애사적 감정으로 치부해버리면 왠지 약간 유치해지거나 가벼워지는 경향 같은게 조금은 있는것 같아 그런게 싫은가봐요ㅋ

    나중에 다른 번역가의 작품으로 한번 더 읽어볼까 생각하고는 있어요.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읽어볼때는 방문자님의 견해를 참고해서 조금 다른 시선으로 읽어볼께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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